<?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channel><title> i 세브란스  : 체험수기/극복기</title><link>http://www.iseverance.com</link><description> i 세브란스  RSS 서비스 | 체험수기/극복기</description><lastBuildDate>2007-01-04T16:17+0900</lastBuildDate><copyright>Copyright 2009 Yonsei University Health System. All Rights Reserved.</copyright><webMaster>w3admin@yuhs.ac</webMaster><language>ko</language><item>	<title><![CDATA[수레바퀴 선교회의 홍이석 목사]]></title>	<link>http://www.iseverance.com/lovetoshare/story/essay/view.asp?con_no=20903</link>	<description><![CDATA[<!-- #### Content 내용 시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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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 fl">수레바퀴 선교회의 홍이석 목사</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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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ara">홍이석 목사는 침례교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여의도침례교회에서 교육목사로 시무하던 중, 1989년 여름수련회 현장 답습 차 충남 서산 간척지를 지나다가 갑자기 덤벼든 덤프트럭에 의해 15m 아래 바다로 떨어지면서 경추 6, 7번을 다쳐 사지마비가 되어 연세대 재활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다.</p>
<p class="para">그 때가 37세로 젊은 나이에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었지만 홍 목사는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라는 믿음으로 자신과 똑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또 그들을 모아 수레바퀴 선교회를 만들었다.</p>
<p class="para mgb0">이 선교회를 통하여 재활정보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월간 수레바퀴’를 펴내고 있으며, 이 잡지는 매월 6천부가 장애인들에게 발송되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 장애정보 홈페이지에 한국척수장애인 사이버센터를 구축, 운영하고 있으며 재활문화센터를 통해 컴퓨터교육, 브라가중창단, 화실, 휠체어 농구단을 지원하고 있고, 또 매주일 저녁 병원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며 상담도 한다. 우리 병원에서도 매주일 저녁 7시 척수손상 장애인을 위한 주일 저녁 예배를 인도하신다. 그리고 매년 10월에 열리는 척수장애인 문화예술제와 8월과 1월에 있는 수련회를 통해 척수장애인들 간의 교제를 돈독히 하는 각종모임을 주선하고 있다.</p>
<!-- #### Content 내용 끝. #### -->	]]></description>	<dc:date>2007-01-04T16:17+0900</dc:date>	<author><![CDATA[재활의학과]]></author>	<category><![CDATA[재활병원]]></category></item><item>	<title><![CDATA[세계 신기록을 쏜 정진완]]></title>	<link>http://www.iseverance.com/lovetoshare/story/essay/view.asp?con_no=20902</link>	<description><![CDATA[<!-- #### Content 내용 시작. #### -->
        <p class="para">정진완씨는 1966년 생으로 22세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연세대 재활병원에 입원하여 재활 치료를 받았다. 처음 장애인이 되었을 때 세상을 원망하며, 자신을 비관하고 술로 위안을 삼고자 했지만, 연세대 재활병원에서 스포츠 선수로 입문하면서 이제는 국가대표로, 세계선수권자로, 그리고 사업가로 학생으로 1인 다역의 삶을 사는 비장애인보다 더 활동적인 사람이다. 그는 선수생활 14년 동안 금메달 40개, 은메달 40개, 동메달 60개을 획득하였다.<br />
그의 글을 통하여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p>
<p class="para">나는 1966년 전형적인 한국의 시골, 농촌에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꿈을 쫓아 서울로 상경하여 순탄치 못했던 청소년기를 보냈고, 방황을 하며 젊음을 낭비할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아픔을 맛보았다. 그때가 22살, 세상을 알기도 전에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고 자신을 비관하여 술로써 잊으려 노력했다.<br />
왜 나만이 이런 형벌의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 하늘이 원망스럽고 억울하였다. 그러던 나에게 1988년 장애인 올림픽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돌파구가 찾아왔다. 장애인도 운동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에게 있어 크나큰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농구를 하던 날 얼마나 감격하고 기뻐했는지 지금도 그때가 생생하다.<br />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다는 행복감에 힘든 줄 몰랐다. 지금도 나에게 어떤 시련이 온다면 그때를 생각하며 나 자신에게 질타한다. 처음을 생각하자 그 힘든 재활도 했는데… 그 후로 사격을 시작하여 수많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입상을 하였고, 아시안 게임 및 장애인 올림픽에서 당당히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대 지나온 수많은 아픔이 감격으로 다가와 뜨거운 눈물이 내 가슴을 적셨다.<br />
행복하다.<br />
38세, 16년의 세월이 흘러 내 인생을 돌아본다. 무엇을 하려고 했고, 무엇을 했는가? 이제는 무엇을 하려는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장애를 잊으려고 미친 듯이 살아왔다. 비장애인에게 지지 않으려고 일도 하면서 돈을 벌려고 온갖 짓을 다했다. 연금도 받으면서 조그마한 회사도 운영했다.<br />
이제는 돌려주고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br />
힘들다. 항상 웃으며 나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br />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 인생이란 어차피 빈손인 것을…<br />
이제는 준비해야 한다 인생의 화려한 퇴장을 위하여, 세상의 끈을 놓으려 할 때 인생 무상의 공허를 느끼지 않기 위하여.<br />
4년간의 대학생활.<br />
열심히 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해 버티자! 먼 훗날 후배들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br />
&#160;</p>
<p class="frommsg"><span class="ft_b">2003. 4. 대학생이 된 어느 밤_정진완</span></p>
<!-- #### Content 내용 끝. #### -->	]]></description>	<dc:date>2007-01-04T16:02+0900</dc:date>	<author><![CDATA[재활의학과]]></author>	<category><![CDATA[재활병원]]></category></item><item>	<title><![CDATA[휠체어의 헤라클레스, 이용로]]></title>	<link>http://www.iseverance.com/lovetoshare/story/essay/view.asp?con_no=20900</link>	<description><![CDATA[<!-- #### Content 내용 시작. #### -->
        <p class="para">미스터코리아를 꿈꾸던 건강한 청년 이용로는 1990년 7월 23일 육체미대회 본부에 제출할 기본 포즈를 촬영하기 위해 원주에 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던 중 택시가 빗길 과속으로 미끄러지면서 마주 오던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br />
연세대 재활병원 시절 창틀에 올라 설 수 있는 힘을 길러 자살하겠다는 생각으로 치료하던 중 선천적 장애 아동들이 이를 악물고 신체적 핸디캡과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고 27년 동안 정상인으로 살아온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재활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강인함은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적극적이어서 치료진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언젠가 반드시 걷게 되리라는 신념으로 운동에 매달렸고 그 결과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선수로, 헬스클럽 강사로, 보디빌더로, 용인대 특수체육과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1인 다역의 삶을 살고 있다.<br />
’98 히로시마 퍼스컵 남자 A조 단식 1위, ’99 일본 고베 오픈 복식1위, ’99 장애인 전국체전 오픈 단식 2위, ’02 부산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경기 테니스에서 남자 단, 복식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여 2관왕이 되기도 했다. 1999년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테니스 단식과 복식에서 2개의 동메달을 획득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단식과 복식에서 2개의 금메달로 2관왕이 되어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백마장도 받았다.<br />
다음은 이용로씨가 저서한 “휠체어의 헤라클레스, 세상을 들다”의 에필로그 일부분이다.</p>
<p class="para mgb0"><span class="ft_b">“… 나의 마지막 꿈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꿈이다. 그것은 장애인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며, 그들이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는 넓은 광장을 만들어 나가는 꿈이다. 그 꿈을 위해 나는 오늘도 바벨을 든다. 세상을 드는 마음으로.<br />
내가 다시 걷게 된다 할지라도 언제나 나는 ‘휠체어의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으로 불려지기를 희망해 본다.” </span></p>
<!-- #### Content 내용 끝. #### -->	]]></description>	<dc:date>2006-02-04T15:00+0900</dc:date>	<author><![CDATA[재활의학과]]></author>	<category><![CDATA[재활병원]]></category></item></channel></rss>